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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 복음 간증/심판을 체험한 간증

진리를 깨달아야만 자신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자신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저는 줄곧 겉면의 행위만 적합하고, 사람이 보기에 그 어떤 ①패괴나 드러남이 없다면, 바로 변화가 있는 것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 저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유독 신경을 많이 써 왔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겉면의 행위만 맞고 표면적인 행위나 방식만 적절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책망 훈계가 임하였을 때, 제가 주목하고 중하게 여기는 부분은 단지 자신이 하는 방식에서 맞지 않은 부분이 어떤 것인지에 있었습니다. 그냥 방식 면에서 저를 설파하면 인정하지만, 더 나아가 패괴 본성을 인식하는 부분에 있어 저에게 교제를 해 주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려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교제해 주었고, 또한 제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얘기해 주기에 저는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에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늘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것도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 저는 바로 “네, 저의 본성이 사악합니다.”라고 그 말을 받아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성을 인식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②표현은 어떤 본성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일일이 외워 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것은 어떤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까?”라고 묻게 되면 저는 “교만, 사악, 악독, 궤사…”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렇게 일문일답식으로 하면 빈칸 채우기처럼 너무 간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형제자매들은 제가 자기를 인식함에 있어 너무 얕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저 같은 사람은 너무 교만하고 저는 정말 너무 사악하고 너무 악독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전에 인식했던 부분에 ‘너무’라는 단어만 붙여도 한층 더 깊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라고 요구하신 뜻을 알지 못하고 투철하게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앵무새가 말을 따라하듯이 자신을 인식하는 말 몇 마디만 하였을 뿐 마음 깊이 인식하거나 체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증오하지도 않았고 이대로 가면 얼마나 위험한지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매우 엄한 말씀을 보아도 저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였고 철저하게 깨닫지 못하였기에, 저의 성정은 시종일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우매하고 마비되고 소질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계속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특히 최근 한동안, 하나님은 저에게 깨우치고 인도하는 사역을 많이 하셔서 저로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의미를 알게 하셨고 성정 변화에 도달하는 길도 찾게 하셨습니다.


며칠 전, 저와 한 형제가 새로운 섬김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여럿이 함께 교제할 때, 섬김의 집의 연세 드신 자매님이 전에 돌봐 주셨던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패괴를 드러냈는지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형제자매들에 대한 자매님의 선입견과 견해를 말해 주었습니다. 듣고 나서 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그 말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자매님에게 진리를 교통해 주지도 않고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며칠 뒤에 저희와 같이 ③본분을 하는 다른 형제 2명이 저희가 있는 곳에서 며칠 묵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간 뒤에 자매님은 또 우리에게 그 두 형제에 대한 일부 견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각 반응했습니다. 속으로 ‘자매님이 얘기한 그런 것들은 대부분 사실과 맞지 않아. 모두 자매님의 의구심일 뿐이야.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 사이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 줘야 한다고 하셨으니 난 진리를 실행해야겠어. 자매님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부분의 진리를 교통해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통해 주고 나서 이틀 뒤에 자매님은 저를 찾아와 교제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한 어떤 말이 그를 구속했고 제가 말한 어떤 일이 그로 하여금 속박받게 하였다면서 마음속의 생각들을 전부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말하면서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는 ‘이 자매님이 의심이 너무 많네. 아무나 의심하더니 이젠 내 차례인가.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어. 진리를 확실하게 교통해 주어 나에게 선입견이 생기지 않게 만들어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돌려 얘기하지 않고 툭 터놓고 얘기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자매님이 드러낸 이런 표현들은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 그리고 사람을 의심하고 논단하는 표현들에 대해서도 다 직설적으로 언급하며 교제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겉면으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뒤 며칠 동안, 자매님은 이 병 저 병으로 계속 앓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저는 속으로 ‘자매님이 분명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겉으로 받아들이는 척을 하고 있으니 이는 거짓이고 기만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어? 질병의 고통이 임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공과가 있는 것이니 자매님이 연이어 병이 난 것에 대해 마땅히 자신을 잘 성찰해 볼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저는 또 ‘책임감’이 발동하여 자매님을 찾아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얼굴색이 매우 안 좋아 보였고 겉으로도 받아들이기 싫어했습니다. 저는 매우 당혹스러워 속으로 ‘내가 이렇게 사랑으로 돕고자 교통해 주는데, 받아들이지도 않고 사람을 의심까지 하다니. 너무 진솔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자매님이 스스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됐어, 난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자매님 좋을 대로 하라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매님에게로 돌렸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너무 교활하고, 저 자신은 진리를 실행하고 형제자매를 돕기 원하며 하나님의 뜻을 배려하는 좋은 형제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저는 마음속으로 자매님에 대한 오해가 가득했고 자매님도 더 이상 저의 교통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자신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이런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자 저는 부득이하게 자신을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설마 내가 잘못한 것일까? 난 잘못한 거 없잖아. 자매님의 부족한 점을 보게 되어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준 것밖에 없잖아. 그럼 내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은 까닭일까? 그것도 아닌데. 매번 자매님과 교통하기 전에 난 모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했으므로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전에 사람을 도울 때도 이같이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 적도 없단 말이야.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자매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매님은 정말 단순하지 않단 말이야.’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마음은 또 불안해지고, 특히 자매님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볼 때면 마음이 괴로웠고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해 자매님을 돕고 싶었지만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찾고 구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의 두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너의 마음은 오히려 그 옛 뱀보다도 더 음험하다. 심지어 너의 두 입술은 레바논 여자처럼 예쁘지만 너의 마음은 오히려 레바논 여자보다 선량하지 못하고 더욱이 가나안 사람보다도 아름답지 못하다. 너의 마음은 너무나 궤사하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