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자가 변화된 과정
“하나님 사역 너무나 실제적이네. 공의와 거룩으로 가득하고, 오랜 세월 인내하며 우리 위해 사역하시네. 전에 하나님을 믿어도 사람의 모습이 없었고,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하여도 전혀 모르고, 오늘에야 수치 회개 빚진 것을 알았네. …당신의 엄한 심판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고, 진실한 당신 사랑에 감동받고 또 빚졌네. 당신의 사역으로 구원받고 성정 변화되었네. 마음에 슬픔 고통 없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 내게 주신 사랑 너무 크네>에서 발췌)
매번 이 체험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오랜 시간 구원이 떠오르면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의 마음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형벌로 교만 자대하고 야심이 아주 많고 패역한 저를 변화시켜 사람의 모양이 조금이나마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도 가난한 데다가 부모님도 온순하여 저는 늘 남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고, 매를 맞거나 수모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이로 인해 툭하면 울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고, 장래에 작은 관직이라도 얻어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려는 바로 그때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홍위병이 반란을 일으키고, 노동자가 파업하고, 학생이 동맹 휴업을 하고 매일 혁명을 일으키는 바람에 난장판이 되어 민심이 흉흉해졌고, 대학 입시 제도도 금지되었습니다. 진학 시험을 볼 기회를 잃은 저는 중병에 걸린 것처럼 괴로웠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후에 저는 ‘진학 시험을 보지 못하고 관직도 얻지 못할 바에는 열심히 돈이나 벌자.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우러러보잖아.’라고 생각하고,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장사할 밑천도 없었기에 저는 친척과 친구에게 500위안을 빌려 정육점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고기는 한 근에 0.7위안밖에 하지 않았지만 각종 필요한 도구들을 사고 나니 500위안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번번이 오늘의 수입을 내일의 밑천으로 썼고, 돈을 벌기만 하면 빚을 갚았습니다.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저는 무진장 애를 썼고 하루종일 여가 시간도 없었습니다. 몇 년의 노력 끝에, 일솜씨도 점점 좋아졌고 장사도 갈수록 번창해졌는데, 그로 인해 집안도 어느새 부유해져 많은 사람이 부러운 눈길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거만한 자가 변화된 과정
1990년 봄, 마을의 한 사람이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들어 보려고 몇 번 갔었는데, 한 형제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앙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존경받는 그 장면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데다가 주님의 은혜와 상도 받을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저는 가정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경을 깊이 연구했고 특히 성경 지식을 추구하고 성경 장절 외우기를 중요시했는데, 그 결과 마침내 유명한 장절을 많이 숙지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신 말씀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를 보면서 저는 속으로 ‘돈은 적당히 있으면 충분해. 아무리 많이 벌어 봤자 죽으면 그만이잖아? 주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베드로를 본받아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장사를 그만두고 하루종일 교회에서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아주 열성적이었고, 친척과 친구들을 목표로 단시간에 19명을 전도했고, 또 그 19명을 통해 23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저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글자대로만 이해하여,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행하고 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으므로 다음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땅에서 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야심의 지배로 저의 열정은 더없이 커졌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솔선수범하여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심지를 세웠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집에 가서 물을 기르거나 장작을 때거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병에 걸린 형제자매에게 문안도 했으며, 누가 돈이 없으면 제 돈으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다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솔선수범하여 저는 형제자매들의 일치된 호평을 받게 되었고 상층 교회 책임자의 신임도 얻게 되었습니다. 1년 후 저는 교회 책임자로 발탁되어 30개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는데, 관리해야 할 신도가 거의 40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런 지위를 얻게 되자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고, 저의 노력이 끝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되자 저의 마음속에는 또 더 높은 이상(理想)이 생겼습니다.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찬양과 숭배를 받고 싶었습니다. 또다시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저는 교회의 상층 책임자가 되었고, 5개 현의 동역자를 인솔하게 되었으며, 420개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맡겨진 일들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특별히 겉면의 좋은 행실을 중요시하고, 동역자와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좋은 이미지 세우기를 중요시했습니다. 동역자들의 지지와 형제자매의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하여 저는 교회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것을 반대하고 이성 교제와 모든 부조리를 금지시켰습니다. 저의 ‘정직함과 정의감’은 동역자와 형제자매의 옹호와 찬성을 얻었고, 이로 인해 저의 교만한 본성도 점점 더 부풀어 올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주 쓰는 성경 구절은 거꾸로도 줄줄 외울 수 있었고, 하층 교회 책임자와 동역자들에게 설교할 때 성경을 보지 않고도 성경 구절이 입에서 술술 나왔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다 저에게 매우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엇이든 다 제가 결정했고 누구나 다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가 한 말이 맞고 제 견해가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관리하는 것이든 구분하는 것이든, 교회 책임자와 동역자를 발탁하는 것이든 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았고, 다 저 혼자 결정했습니다. 정말 ‘왕권을 잡은’ 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단에 서서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자신의 풍채를 매우 즐겼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저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낼 때마다, 뭇별이 달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저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고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특히 매번 요한복음 12장 44~45절,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리고 3장 34절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속에 매우 누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여겼고, 하나님이 저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어 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을 이해할 수 있고, 남들이 모르는 ‘내포된 뜻’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위가 가져다준 즐거움 속에 잠겨, 제 자신이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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