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당시 30대였던 저는 건축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저는 내 스스로를 젊고 건장하며, 충성스럽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여겼고, 건축 기술 또한 뛰어났습니다. 이것으로 회사에 기여해서 직장에서 성공하면 남들보다 나은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목표를 안고 그 회사에서 몇 년을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사람 됨됨이와 기술이 다 나무랄 데 없는데도, 제 노력과 공이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직원 급여는 최고 6등급이었는데, 제 급여는 항상 3급에 머물렀습니다. 기술도 저보다 못하고 근무 기간도 저보다 짧은 직원들은 급여가 올라도 저는 예외였습니다. 대체 왜 다른 사람은 급여를 올려 주는데 저는 올려주지 않는지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나중에 저와 친한 한 직원이 넌지시 알려주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과 어떻게 지내느냐가 가장 중요해. 최소한 설에라도 성의 표시를 해야지.” 이 말을 듣고서야 저는 줄곧 제가 회사로부터 인정받지 못 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무척 화가 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아첨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회사에서 요령만 피우며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못마땅했지만, 회사에서의 입지를 위해서 저는 이런 보이지 않는 규칙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 연휴에 사장에게 ‘성의’를 표시하고 나서 저는 즉시 팀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팀장으로 승진한 저는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공사 품질과 작업 진도를 엄격하게 관리 감독, 지도하고, 팀원들의 안전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저의 이런 자세와 기술 지도는 팀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각 팀장들이 사장에게 선물을 얼마나 보내느냐가 거취를 결정하는 첫번째 조건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계속 연임하기 위해 그런 생존 규칙을 얌전히 따르면서, 저는 어쩔 수 없는 ‘적자생존’의 잔인함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그 후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으로 각지에서 개발 공사가 대거 시작되었고, 우리 회사도 공사를 개인에게 하청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 공사팀이 공사를 하청 받기 위해 접대와 뇌물을 주는 관행이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어떤 기관에서 공사를 한다고 하면 팀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를 싸매고 아는 인간관계를 총동원하여 공사를 주최하는 기관에 뇌물을 한 보따리 보냈습니다. 각 기관장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뇌물을 주는 사람은 온갖 궁리를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현금을 생선이나 닭의 배를 갈라 안에 넣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현금, 황금 장식품, 다이아몬드 반지 등 보내는 물품도 다양했습니다. 저도 남들이 하는 대로 머리를 짜내 사장의 비위를 맞추고 겨우 공사를 하나 수주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할 때 건설국, 질량감독국, 설계원, 심지어 공사 부지팀의 간부까지 ‘감독 지도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서, 공사 부지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통과시켜줄 수 없다면서 오전 내내 검사만 하고 공사는 시작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고급 식당에서 관계자들을 대접했습니다. 한 끼 식사에만 무려 몇 천 위안이 들었습니다. 접대를 마치면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돈 봉투를 건넸습니다. 봉투 안에 적게는 이천 위안, 많게는 오천 위안에서 만 위안까지 넣어야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착공 후에는 관리감독 부서에서 정기적으로 인원을 파견하여 품질 감독을 진행했습니다. 말로는 공무를 수행한다고 하지만, 사실 뭔가를 뜯어갈 구실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공사장을 ‘왕림’할 때마다 저는 부지런히 대접하고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관리 부서의 장(長)들은 핑계를 대며 저보고 쇼핑을 같이 가자고 합니다. 가서는 고급 브랜드 옷만 골라 제가 계산을 하도록 만드는데, 심한 경우는 대놓고 자기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 돈을 대신 내 달라고 합니다.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려고 울분을 참고 거기에 ‘동참’하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높으신 분들을 모시도 유흥가를 들락날락하면서 폭음을 밥 먹 듯하고,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다 보니 위장질환, 고혈압이 생겼습니다. 정말 심신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사를 마친 후 계산해 보니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자기 기술로 일해서 돈 버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 나라의 체제 안에서 일하는 모든 부서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부패하였는가?‘였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결국 돈벌이에 대한 희망을 또다시 높으신 분들에게 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는 그들과 관계를 잘 다져 두면 앞으로 발전하는 데 발판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저를 철저하게 죄악의 늪으로 빠뜨리고 궁지에 몰아 넣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1992년 저는 우여곡절 끝에 시(市)에서 하는 공사를 하나 계약했습니다. 돈을 제법 만질 수 있는 공사였습니다. 야심차게 공사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때 회사 사장이 저를 불러 시청 간부 네 명에게 각각 개인 별장 한 채씩 지어주라고 했습니다. 사장은 이것이 앞으로 제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시청 간부들을 위해 일할 수만 있으면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가득 희망을 안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리는 등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자금을 마련하여 별장을 지었습니다. 공사 마무리를 앞둔 어느 날, 상급 기율검사 기관에서 검사를 나왔습니다. 저는 또 돈을 들여 시청 공무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일을 적당히 무마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노력으로 공무원들이 법망을 빠져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공무원 네 명은 뇌물 수수죄로 검찰 기관으로부터 법적 처벌을 받았고, 공들여 세운 제 계획도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별장은 채 완성도 되기 전에 몰수당하고 수십 만 위안의 빚만 떠안게 된 저는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서는 다른 공사를 수주하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 저는 건설업에 종사한 이래 해본 적도 없고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부실공사입니다. 저는 국가 표준 철재를 기준 미달 제품으로 바꿔치기 했습니다. 철근 여섯 근을 네 근으로 줄여서 철재 비용 1/3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시멘트 사용량도 줄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체 공사 비용을 절약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공사를 할 때마다 나중에 공사 품질에 큰 문제가 생길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특히 전국에서 부실공사로 주민들이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은 소식이 들리면 더욱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자주 악몽을 꾸고 천둥이라도 치면 하늘이 벌을 내려 벼락이라도 맞지 않을까 하루 종일 불안에 떨며 지냈습니다. 그 후로 병까지 잇따라서 고혈압으로 인한 어지러움과 두통,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서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세상의 조류 속에서 제 자신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도, 공사가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원청 업체에서 대금 지급을 자꾸만 미뤘습니다. 그 바람에 은행 대출만으로는 인건비를 충당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고리대금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알아낸 사실은 원청 업체가 오래 전부터 적자 상태라 공사를 시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공사도 물거품이 되었고 어떻게 일을 수습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저는 처절한 절망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 무렵 한 회사의 공사 하청 팀장이 거액의 빚을 갚지 못하자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도 이미 지옥 문턱까지 와 있다는 생각에 사지로 몰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후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서 아예 집안 침대에 드러눕기도 하고 소란을 피우거나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비위를 맞추며 그 사람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정말 체면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마저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태도를 싹 바꾸고 저를 외면했습니다. 염량세태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 없이 지나온 그 몇 년을 돌이켜 보면 돈 버는 건 고사하고 심신이 망가지고 수십만 위안의 빚만 남았습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습니다. “하늘이시여, 사는 것이 너무 고달픕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너희를 이 단계까지 이끌어 온 만큼 거기에는 나의 적합한 안배가 있고 나 자신의 목적 이 있다. 지금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면 너희가 정말 인식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자신을 위해 출구를 찾지 않은 적이 있느냐? 누가 자신의 앞날을 고려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풍부하고 화려할지라도 만세 후의 오늘이 이럴 줄이야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느냐? 설마 너의 주관적인 노력의 결과란 말이냐? 네가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싸워 얻은 것이란 말이냐? 너의 머리로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이냐? 내가 온 인류를 인솔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나의 안배에서 벗어나 달리 출구를 찾을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의 ‘생각’과 ‘소원’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단 말이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바라는 대로 되지 못했는데, 설마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은 뜻하지 않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 설마 그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란 말이냐? 온 인류 중에, 전능자의 눈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은 자가 누구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누구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더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이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제11편 말씀≫에서 발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본 저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자기 손으로 장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을 뒤돌아보니 저는 계속 제 앞길을 위해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벌기는커녕 많은 돈을 날렸습니다. 행복하던 삶이 지금과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위해 끊임 없이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왜 나는 계속 실패만 거듭할까?’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 하나님의 명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라는 느낌이 든 순간 저도 모르게 전능하신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예전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제 자신과 세력에만 의지하여 절망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오늘에야 사람의 운명, 사람의 생사존망이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고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당신의 주재이자 명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환경이 없었더라면 당신 앞으로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길을 가야 할 지는 당신의 안배에 따르겠나이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제가 본 것은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끼리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성실하게 서로를 대했습니다. 가식적인 인간 관계도 없고,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일도 없었습니다. 다같이 모여 말씀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예배 때는 모두들 마음을 활짝 열고 성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자신의 체험, 부족한 점, 힘든 점을 교통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교회 생활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생기가 흘렀습니다. 이곳에서는 형제자매들 사이에 거리감이나 경계심 없이 서로 이해하고 흉금을 터놓습니다.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해방감과 자유, 홀가분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제가 그 동안 힘들게 살았던 원인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매우 큰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네가 광명의 비췸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은 그 악한 자에게 빼앗겼으며, 너의 두 눈은 흑암에 가려 하늘의 태양과 밤하늘의 반짝이는 그 별을 보지 못하며, 너의 두 귀는 기만하는 말에 막혀 천둥 치는 듯한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물소리도 듣지 못한다. 너는 본래 소유하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전능자가 너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도 잃어버렸으며, 끝없는 고해 속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할 힘도 없고, 살아돌아올 희망도 없으며, 다만 몸부림치고 있고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 시각부터 너는 그 악한 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도록 운명지어졌고, 전능자의 축복과 공급을 멀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 너는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깊이 잠들어 있고, 그 악한 자에게 유혹되어 끝없는 지경에 들어가 방향도 없고 이정표도 없다. 그때부터 너는 시초의 천진무구함을 잃어버렸고, 전능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하였다. 그 악한 자가 너의 마음속에서 너의 모든 것을 이끌면서 너의 생명이 되어, 너는 더 이상 그 자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의심하지도 않으며 그 악한 자를 너의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간주하였다. 너는 그 자를 공양하고 참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자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 생사를 약속하였다. 너는 네가 도대체 어디에서 왔고, 왜 살아야 하며, 왜 ‘죽는’지는 전혀 모른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 전능자의 탄식≫에서 발췌) “사탄은 국가정부와 유명 인사나 위인의 교육과 영향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그들의 허튼소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고 본성이 되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말은 사탄의 명언인데, 이미 모든 사람에게 침투되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그리고 처세 철학에서 온 말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 나라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라는 것으로 사람을 교육하여 인류를 치명적인 재난의 망망대해에 빠지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은 사탄을 섬긴 탓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 하나님께 훼멸된다.”(그리스도의 좌담기록 •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몇 십년 동안 제가 이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온 것은 제가 “운명은 자기 손 안에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아첨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와 같은 사탄에게서 나온 생존 법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렸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인생의 방향도, 사람됨의 원칙도 없이 살았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이 사탄이 권세를 잡은 세상이고, 곳곳에 사탄의 시험과 함정, 속임수로 가득하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하는 법과 부실공사 하는 법만 배웠습니다. 양심은 조금씩 없어지고 인격과 존엄도 잃어버린 채 죄악의 구렁텅이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사람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돈은 벌지도 못하고 빚만 잔뜩 떠안은 채 파멸의 길로 들어서다시피 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액의 빚 때문에 자살을 택한 그 팀장도 이렇게 사탄의 순장품이 된 것이 아닌가? 지금도 이런 비극이 매일같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제서야 저는 사람이 이 지경까지 되는 이유는 모두 사탄 독소의 괴롭힘이자 사탄이 권세를 잡고 인도하는 세상의 조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감격으로 벅차 올랐습니다. 천만다행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 덕분에 저는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 집에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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