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인열폐식’이라는 사자성어를 아십니까? 이 말은 목이 멜까 식사를 끊는다는 뜻으로, 조그만 장애를 걱정하여 중대한 일을 그만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 보면, 많은 분들이 주의 재림을 맞이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이단과 미혹하는 거짓 도(道)를 가르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자주 듣게 되는데요, 혹시라도 미혹을 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주의 재림을 전하는 말은 일절 듣지도, 보지도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눈과 귀를 꼭 닫고 있으면 돌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글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려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입니다. 이 글을 보시면서 바른길을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신앙 Q&A 담당자님께:
안녕하세요! 최근 들어 이런 설교를 많이 듣습니다. 지금은 말세라서 갈수록 큰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으니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이단들과 거짓 도를 전하는 자들도 많아지고 있으니 깨어 기도하고 주의 도를 행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전하거든 절대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가 미혹될까 두려워 주의 재림을 전하는 말씀은 아예 듣지도, 보지도 않고 접촉하지도 않는다면, 주님을 문전박대 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지, 인열폐식으로 대응하면 과연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미혹될까 두려워서 외부와 단절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 자세일까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나요?
김정혁
2019년 10월 21일
김정혁 형제님
안녕하세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주셨네요. 이 부분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문제고, 또 주 안의 많은 분들이 의문스러워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그럼 이 주제를 놓고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로서 온 것은 담대함이요, 사탄에게서 온 것은 두려움이라
말세에 주님은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그와 함께 이단들과 거짓된 도(道)를 전하는 자들이 출현하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주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두려움에 빠져 주의 재림을 전하는 말씀은 일절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접하지 않는다면, 미혹될 일은 없겠지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오류도 함께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이 ‘안전’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그 속에도 사탄의 계략이 감춰져 있습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취를 찾아 나서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나쁜 생각을 주거나 그릇된 사설을 퍼뜨리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미혹하고 묶어 두려고 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소극적이고 소심한 상태에 빠뜨려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어도 알아볼 용기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재림을 맞이함에 있어 우리가 이단과 거짓된 도(道)를 경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소탐대실이 아니겠습니까? 이단과 거짓된 도를 아무리 잘 막아 냈을지라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 내쳐지고 도태될 미련한 처녀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계시듯이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따라서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을 겁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렘 51:46) 그리고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담대한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오직 사탄에게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령님의 인도가 함께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혹될까 두려워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명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이라면,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만 이단과 거짓된 도에 미혹을 당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알아보고 구할 때,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하며 진리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거짓된 도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겁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이야기는 무조건 듣지 말고 보지 말고 접하지도 말라는 목회자들의 실천 방식은 결코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실천은 참도를 찾고 상고하는 우리의 앞길을 막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 뿐입니다. 이런 문제를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도에 대한 믿음은 도를 들음에서 나는 것이기에 찾고 구해야 참도를 얻을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도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들음에서 납니다. 들어 봐야 그 도가 참도가 맞는지, 하나님이 나타나 하시는 사역이 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 사역하셨을 때를 보면,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참도임을 부인했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사역에 대해 알아보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을 미혹했습니다. 분별력이 없었던 유대인들은 맹목적으로 바리새인들의 말만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바리새인들을 좇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마태, 마가, 요한 등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 퍼뜨리는 소문을 믿지 않았고, 미혹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갈급한 마음, 찾고 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곳에는 제자들이 항상 따라갔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모하는 마음과 찾고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보게 되었고, 주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메시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진리를 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계시록에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3장)라는 예언의 구절이 수차례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이렇게 주님은 말세에 재림하시면, 그의 음성이자 말씀을 하시고,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통해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함에 있어서 찾고 구하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전하면, 그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니,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진리가 있는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살펴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참도와 거짓 도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때 먼저 적극적으로 찾고 구해야 하고, 소심하게 방어적인 태도만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시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또 남았습니다. 바로 반드시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고 헤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이 말씀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도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믿는 이유도 그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믿는 것은 역시 영을 믿는 것이다. 영과 육신이 서로 구별되긴 하지만, 그 육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도를 구별하려면 먼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다음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란 정상적인 인성이 지닌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으로, 모든 정상적인 인성(즉, 이성,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말씀을 통해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적인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그 진리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갈수록 정상이 된다. 또한 사람의 인성과 이성은 갈수록 온전해지고, 사람의 육의 생활과 영적 생활이 갈수록 질서를 갖추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이것들이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역과 진리를 체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참도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말씀이 초자연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인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춘다면 그 말씀이 참도인지 확신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고, 또한 인성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의 성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해 갈수록 더 잘 알게 되며, 갈수록 더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은 갈수록 더 성장하고, 사람의 타락 성품은 갈수록 더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본래의 뜻이다. 그 말씀이 사람의 본질적인 것들을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수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인성이 나빠지게 하고 이성이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참도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거나 옛 말씀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말씀에서 보셨듯, 참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도에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역사가 있으니 당연히 성령의 수호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당시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시며 회개의 도를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모두 주께 진심으로 부르짖으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었고, 주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또 죄를 범한 후, 진정으로 주님께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고,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나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주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가책을 느꼈습니다. 주의 말씀과 사역을 계속 경험하면서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점점 커져 갔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로마 정부와 유대교의 정죄와 핍박을 받았음에도 복음은 유대 땅에서 크게 퍼져 나갔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갈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흘러 지금 예수님의 복음은 이미 온 세상에 두루 전파되었고, 기독교를 국교로 한 나라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역사의 열매입니다. 이와 반대로 거짓 도는 성령의 이끄심이나 보호가 없으며, 거짓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도 없고, 참된 사랑도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열정적인 것 같지만 그 열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서 난 것은 반드시 무너지나 하나님께로서 난 것은 반드시 흥성한다’라는 말의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역사의 유무를 통해 참도와 거짓 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참도에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진리를 말씀하실 수 있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고,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나아갈 실행 길을 가리켜 주며, 우리의 모든 문제와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 사람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어 율법에 의해 정죄받고 죽어야 할 위기에 놓였을 때, 하나님은 그 시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속(救贖)하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진리를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오래 참으며, 원수도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으며,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며 남을 속이고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정죄하는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신령과 정직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등등의 요구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미워하시는 사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에 따라 행하면 어떤 고민도, 그 어떤 어려움도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점점 더 진리도 깨닫게 되고, 점점 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고, 하나님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참도에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있으며,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필요를 공급해 줄 수 있고, 새로운 실천의 길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진리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새로운 실천의 길도 가리켜 주지는 못하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사역과 말씀을 반복하거나 그럴듯한 이치나 알게 하고, 식상하고 진부한 규례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참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낡은 도이거나 거짓 도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런 것은 사탄과 악령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하나님의 과거 사역을 따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참도를 판단하는 세 번째 원칙은 바로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하심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앎을 갖게 됩니다. 율법시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시고, 사람들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건 일반 백성이건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제사장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타 죽었고, 일반 백성이 율법과 계명을 어기면 돌에 맞아 죽거나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모두가 하나님은 영이시자 무소부재한 분이시며, 전 우주를 살피시고 인간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위엄과 진노와 저주와 불사름의 성품을 지니고 계셔서 거스를 수 없는 분임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 주셨으며,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포용과 인내,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는 등의 가르침을 주셨고, 종국에는 십자가에 달려 인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는 자비와 긍휼이 가득함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은 영으로 일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어 인간의 형체를 갖추어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실 수도 있으며, 충만하신 사랑과 인내로 인류를 대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앎을 갖게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낮추심과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경험할수록 사람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보게 되었고, 절대 거스를 수 없는 그분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하심은 사람의 찬양과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모와 경외심,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진리를 살아 내기를 갈망하고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인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참도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앎을 가져다주고, 하나님의 성품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해 주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반대로 거짓 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하심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실질적이고 참된 앎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 주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 가지가 바로 참도와 거짓 도를 구분할 수 있는 원칙입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우리가 진심으로 찾고 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알아보면서 이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비추어 보고 구분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거짓 도에 미혹될까 두려운 마음에 일절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접하지도 않는 태도로 마음문을 굳게 닫는다면, 결국 그 ‘인열폐식’ 때문에 주의 재림도 맞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희에게 메시지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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