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인가? 어떤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간증인가?
성경 참고: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 1:20~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2, 10)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4~5)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인가? 어떤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간증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가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었고 전 인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자신의 타산과 안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지기, 즉 하나님 자신이다(사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인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그의 이 사실로 어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핵심으로 하여 늘 천부에게 기도하면서 천부의 뜻을 찾고 구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시여,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께서 이루시옵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행하시옵소서, 사람이 연약하지만 어찌 당신의 체휼을 바라겠나이까? 당신의 수중에 있는 개미와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겠나이까? 제 마음은 단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옵고, 당신께서 하시려는 것을 당신의 뜻대로 저에게서 이루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늘 강대한 힘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곳을 향해 나아가게 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전 인류를 구속하는 이 사역을 완성했고, 모든 죽음의 그늘의 통제를 초탈했는데, 사망, 지옥, 음부가 그의 앞에서는 위력을 잃었고, 그는 이것을 모두 이겨 내었다. 그는 33년이라는 일생 동안 늘 하나님이 그 당시에 하는 역사에 따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였고, 자신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침례를 받은 후,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의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중책을 그에게 맡겨 완성하도록 했는데, 그는 그 중임을 완성할 자격과 권리가 있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지기(知己)여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하나님에게 일편단심이어야 한다. 사람 뒤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앞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담만을 헤아려야 한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지기이다. 하나님의 지기가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중대한 부탁과 하나님의 부담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할 수 있고 전망과 득실을 따지지 않는데, 설사 아무런 전망도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지기라고 한다. 하나님의 지기는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비록 육체가 힘들고 연약할지라도 고통을 참고 애지중지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더 많은 부담을 이런 사람에게 더해 주며, 하나님이 하려는 일을 이런 사람을 통해 발표해 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뜻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직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왕이 되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신을 배반하며, 그에 따라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성취하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 역사의 절차에 관하여>에서 발췌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였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복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생활의 궁핍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한 것이 아닌가? 형벌과 심판이든, 환난이든 죽기까지 순복하는 데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성분이다. 사람이 이 정도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합격된 피조물이다. 이것은 조물주의 마음을 최고로 흡족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베드로에 대해 언급하면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다……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 뜻을 더듬는 것은 더욱 중요시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하였기에 영 안이 시종일관 매우 예민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내 뜻에 맞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실패의 올무에 들까 봐 몹시 두려워하여, 지난날에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과 결부시키기를 중요시하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는 또 역대 이래 하나님을 사랑한 모든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요시하여 소극적인 방면에서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적극적인 방면에서 더 빨리 성장하여 내 앞에서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바, 그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나의 손에 맡기고, 의식주마저도 자신의 성미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나를 만족케 하는 기초 위에서 나의 풍부함을 누렸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 앞에서 보인 그의 충심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몇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푯대와 모형이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욥은 처음 시련을 받을 때,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빼앗겼다. 욥은 그것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를 사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즉, 욥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일에서 순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것은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 속에서 나타낸 표현이자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한 간증이다. 두 번째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쳐 욥, 본인을 괴롭혔다. 욥은 비록 전에 없던 아픔을 체험했지만, 그 간증은 오히려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욥은 자신의 강직함과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고, 욥의 표현과 간증은 다시 한번 하나님에게 인정되고 열납되었다. 그때의 시험에서 욥은 실제 행동 표현으로 사탄에게 선고했다. 즉, 육체의 아픔은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복을 바꾸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앗아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욥은 죽음이 닥친다고 해서 하나님을 욕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욥의 의연함은 사탄을 작아지게 하였고, 욥의 믿음은 사탄을 두려워하게 하고 간담이 서늘케 하였으며, 사탄과 결사전을 펼치는 욥의 기세는 사탄을 침통하게 하였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으로 사탄은 더 이상 욥의 몸에 손댈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였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것도 포기하였다. 그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죽음도 이겼음을 뜻하고, 완전히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에서 간증을 굳게 섰고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적으로 살아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신의 생존 법칙의 범위도 넓히게 되었다. 그 두 차례의 시련을 겪고, 욥의 인생에는 더 풍부한 경력이 있게 되었다. 욥은 그 ‘경력’으로 더욱 성숙되고 노련해졌으며, 더욱 굳세지고 더욱 믿음이 생겼으며,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그 가치를 더욱 굳게 믿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염려(원문: 顧念)의 정을 깊이 체험하고 느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었다. 그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많아졌다. 여호와 하나님의 시련은 욥을 천 리 밖으로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욥의 마음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했다. 욥이 감당한 육체의 아픔이 극에 다다랐을 때,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보살핌을 느끼게 된 욥은 저도 모르게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 표현은 욥이 이미 계획해 놓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하나님을 향한 헤아림과 깊은 사랑이 자연적으로 유로된 것이다. 욥의 그 ‘자연적인 유로’는 하나님을 향한 헤아림과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욥이 자신을 증오함으로 인해, 차마 하나님을 고통받게 할 수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욥의 헤아림과 깊은 사랑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때의 욥은 자신이 다년간 하나님을 앙모하고, 갈망하고, 그리워했던 것을 다 헤아림과 깊은 사랑의 경지로 승화시켰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복과 경외심도 헤아림과 깊은 사랑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에게 상처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태도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그 어떤 괴로움과 슬픔, 심지어 불쾌함을 드리게 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기에 욥은 비록 여전히 지난날의 그 욥이었지만, 욥의 믿음과 순복,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에게 완전한 만족과 누림을 얻게 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이루려고 예정한 순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의 명실상부한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의 의로운 행실은 사탄을 이기게 했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게 했으며, 순전함을 얻게 하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키고 초탈시켰으며,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게 했다. 욥은 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참소당했고, 또 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시험당했으며, 의로 말미암아 사탄의 손아귀에 넘겨졌고 의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치고 간증을 굳게 섰다. 그때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질 수 없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욥은 진정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빛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이 엿보거나 해치는 일이 없는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욥은 하나님이 보기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으며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는가?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라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하는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한다. 욥에게서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로소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간증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간증은 모두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한 부분은 정복된 간증이고 다른 한 부분은 온전케 된 간증이다(물론 이것은 장래의 더 큰 시련 후의 간증이고 환난 후의 간증이다). 즉 네가 환난,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으면 너에게 두 번째 단계의 간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관건은 제1부분의 간증을 하는 것이다. 즉 네가 이 한차례 한차례의 형벌과 심판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정복된 간증이다. 현재는 정복되는 기간이기 때문에(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현재에 즉 하나님이 땅에서 역사하는 기간에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땅에 온 주요 사역은 바로 심판ㆍ형벌에 의해 그를 따르는 땅 위의 이 무리 사람들을 정복하는 것이다.) 네가 정복된 간증을 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는 네가 끝까지 따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네가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이런 역사 중의 형벌과 심판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고 네가 이 모든 역사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이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네가 끝까지 따르면 바로 얼렁뚱땅해서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반드시 이 한차례 또 한차례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달갑게 항복할 수 있어야 하고 네가 경력하는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모두 인식과 순복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최종에 정복되는 간증을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정복된 간증은 주요하게 네가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 인식이 있음을 가리킨다. 이 단계 간증의 관건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비춘 것인데 네가 세상 사람이나 권세 잡은 자들 앞에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말하는가에 있지 않고 주로 네가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 간증은 사탄에 대해 하는 것이고 모든 원수들에 대해―하나님이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모든 마귀와 원수 즉 모든 적그리스도―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모든 원수들에 대해 하는 것이다.
……
마지막 한 단계 간증 즉 네가 온전케 될 수 있는지의 간증은 바로 네가 성육신 하나님 입의 모든 말씀을 터득한 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입의 모든 말씀을 살아내어 너에게 요구한 ‘베드로의 풍격’, ‘욥의 믿음’ 이런 조건에 도달하고 더 나아가 죽도록 순복하고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최종에 합격된 ‘사람’의 형상, 즉 정복되고 형벌받고 심판받고 온전케 된 사람의 형상으로 되면 이것이 바로 최종의 간증이고 최종에 온전케 될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4)>에서 발췌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인가 어떤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간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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