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렇게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예수님을 믿었고, 엄마는 늘 저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점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단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풍부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주님을 열심히 믿으면 나중에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거야.” 엄마 얘기를 듣고서 저도 의지할 데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편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또한 그 날이 오기를 꿈꾸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후 갑작스런 사정으로 저는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고향의 한 의류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나이가 어린데다 성격도 무척 내성적이었던 저는 공장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종종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야. 어떤 일을 만나도 참고 양보해야지. 매사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남들하고 다투면 안 돼.” 저는 엄마가 한 말을 명심하고 모든 일을 항상 인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찬송가 ≪주님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를 흥얼거리며 주님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주님만이 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고, 오늘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덜 괴로웠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이런 신념에 의지하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2013년, 만 21세가 된 저는 의류 공장을 그만두고 대도시로 나가 일을 하였습니다. 거기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아침마다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고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을 마주했습니다. 안간힘을 써야 겨우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 없이 일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대충 점심을 먹고 또다시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고단한 생활을 몇 개월이나 해도 생활비를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습니다. 생활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힘들고 억울한 생각에 저절로 원망이 생겼습니다. ‘남들은 다들 폼 나게 사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언제면 이런 날이 끝날까?’ 대도시의 생활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근사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실감했습니다. 빠르고 정신 없이 돌아가는 생활 때문에 숨이 막혔고 하나님을 가까이할 시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집에 전화를 하면 엄마는 늘 잊지 않고 저를 일깨웠습니다. “우리 딸, 그래도 늘 주님께 기도드려야 한다…명심하렴.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실 날이 멀지 않았어.” 저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주님께서 빨리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시기를 바랐습니다.
2014년, 저에게 일본에 일하러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충실하게 계약 기간 3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일본에 막 도착했을 때는 주변 환경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생활이 집보다 나을 게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장에 일하러 가서 툭하면 혼이 났고 언어 문제 때문에 말도 안 통했습니다. 동료들도 하나같이 경쟁 의식이 심해서 늘 암암리에 경쟁하고, 다들 앞다투어 사장한테 잘 보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저를 더 힘들게 한 것은 한입으로 두말하는 동료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달랐는데, 늘 저를 속이고 흉을 보았습니다. 다들 이익을 챙기느라 사람들 사이에 정이 없고 진정한 친구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익만 중시했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구도 모해하고 가족도 배신하고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이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고 느껴졌고 직원들을 멀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생활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처럼 적응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점점 터득해 나갔고 인간 관계를 위해서 동료 직원들하고 노래방도 가고 술집에도 갔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익과 명리를 위해 다툼이 계속되었는데, 심지어 수도 요금이나 전기 요금과 같은 사소한 생활비 문제로도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도 손해보기 싫어서 이기적으로 생활하며 관용이나 인내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전혀 실천하지 않았죠. 타국 땅에 가족도, 진정한 친구도 없는 저는 갈수록 무척 외로웠는데,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기도를 해도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퇴근하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식사도 거르고 입을 꾹 다문 채 바닥에 앉아 조용히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 세상에 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또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절망감이 심해질 때면 저는 항상 주님이 제게 하신 약속,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우리를 하늘의 집으로 데려간다는 그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그 곳만이 진정한 거룩한 땅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날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외로움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신입 동료인 소과(小果)과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소과는 예수님이 벌써 돌아오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는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에 삶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일까 하는 생각에 섣불리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는데도 주님이 오시지 않았기에 내 평생 주님을 못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오셨다고 하니까 놀랍기도 하고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의아해하는 저를 보고 소과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성육신하시고 인자가 되어서 이 땅에 나타나 역사하시고 계셔. 또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 ·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선집≫을 건네주었습니다. 소과는 이 책 속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으로 하나님이 발표하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진리라고 하면서 가져가서 열심히 읽어 보라고 당부했습니다. 소과의 진정한 태도에 저는 책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잘 알아보기로 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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