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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 복음 간증/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간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정결케 되는 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정결케 되는 길


   2007년, 저는 홀로 싱가폴에 가서 고군분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항상 기온높은 나라인지라 날마다 일할 때는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일이 고된 데다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는 삶이 매우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퇴근 길에 복음 전단지 한 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10) 이 말씀을 보자 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형제를 따라 교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저를 친절하게 맞아 주고 챙겨 주자 저는 마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매주 주일이 되면 교회는 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12월에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주님을 믿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의 설교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21~22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관용과 인내가 어쩌면 이렇게도 클까?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사람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지킬 수만 있다면, 사람들 사이의 다툼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사랑과 따뜻함만 남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꼭 주님의 말씀대로 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2~3년 후, 회사 사장님은 제게 공사장 하나를 맡아 관리하게 했습니다. 저는 온 신경을 일에 쓰느라 예배에 참석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친구의 소개로 이(李) 사장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과 함께 건축 회사를 하나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척 기뻤던 저는 크게 한 건 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돈의 함정에 빠져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일을 잘해서 능력 있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저는 점점 더 엄격하게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일을 잘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저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을 때마다 힐책했습니다. 각 팀의 팀장들도 저의 꾸중을 들을 때면 울기 일쑤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저를 보면 두려워했고, 심지어 피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가깝게 지냈던 친구조차도 저를 차갑게 대하며 더는 저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전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단 한 번도 그 말씀을 지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저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했고, 앞으로는 변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또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2015년 8월, 회사는 경영 부실로 잠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울함과 고민으로 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가 술을 좀 그만 마시라고 권고하면 저는 큰 소리로 꾸짖곤 했습니다. “내가 번 돈이니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거야...” 그럴 때면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그저 옆에 앉아 속상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렇게 아내에게 화를 쏟아내고 나서는 항상 후회하며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해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에게선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 어찌할 수 없이 다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제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많이 내뱉었고, 늘 죄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후회하며 자신을 미워했지만 여전히 제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 죄를 고하고 난 뒤에도 날이 밝으면 또 다시 같은 죄를 저지렀습니다. 주여!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제가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정결케 되는 길




   2016년, 신정에 저는 미국으로 오게 되어 뉴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 공부 모임에 많이 참여하여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청련이라는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청련 자매에게서 전화가 와서 저에게 기쁜 소식 하나를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무슨 좋은 소식이냐고 묻자, 청련 자매는 선교사가 한 분 오셨는데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좋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청련 자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아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 자매의 교통에는 빛 비춤이 있었고,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에게 자신이 늘 죄를 짓고 회개를 하고 있지만 또 항상 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조 자매는 우리가 주님을 믿은 후에도 늘 죄를 범할 뿐만아니라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회개하는 순환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그것은 저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조 자매는 저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낭독한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동영상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지(理智)와 양심은 이미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실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사람의 사상, 사람의 본성, 사람의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며, 근본상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의 성정이 진정한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한 해를 받고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지가 사탄에게 심각하게 파괴된 데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본래의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지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들은 나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훈계하고 꾸짖었잖아. 도덕도 이지도 없었고, 성도의 품위도 잃었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들은 모두 제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씀을 본 적이 없었고, 어느 목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늘 자신이 짓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지만, 또 항상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죄를 벗어 버리는 길을 가리켜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신기했습니다. ‘정말 잘 말씀하셨어. 누가 쓰셨을까?’


   조 자매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다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여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갑자기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접한 저는 너무나 흥분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이 땅에 다시 오신 걸까?’ 저는 조 자매에게 빨리 교통해 보라고 재촉했습니다. 조 자매는 제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이 땅에 다시 오셨습니다. 그 분은 말세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심으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서 사탄 본성에 얽매여 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얻어지게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통해 우리 죄를 속량하셔서 우리로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정까지는 해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즉, 사람 안에는 교만과 간사, 이기심, 탐욕과 악독 등 패괴 성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고, 더 완고한 것들이죠. 이런 사탄의 성정과 사탄의 본성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게 되는 거죠. 심지어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들을 범하고 있지요. 과거에 바리새인들은 왜 주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지 못한 연고가 아닐까요? 사실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패괴 성정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주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이며, 게다가 교만 자대하여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훈계하죠. 그리고 우리는 또 주님께서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서로 아귀다툼하며,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면서 화목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고, 배반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현실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사탄 본성과 성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죄를 짓고 회개하고는 또 돌아서서 죄를 짓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짓는 사탄의 본성 문제를 해결하시고 있습니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께 얻어지게 됩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시면 자연히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더보기


출처: 동방 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