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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 말세 심판/성육신

만약 사람이 성경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


만약 사람이 성경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



성경 참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 15:8~9)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후 3:6)



만약 사람이 성경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람이 글귀 도리를 말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멀어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제16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무엇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에 모두 적지 않은 공을 들였지만 후에는 인식만 있을 뿐 실제의 길을 말하지 못하는가? 너는 인식이 있으면 바로 진리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견해가 아닌가? 네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어도 그중에 실제의 길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 사람을 해치는 행실이다! 이론이 높을수록 더욱 실제가 없기에 더욱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지 못하며, 이론이 높을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최고의 이론을 보배로 간주하지 말라. 그런 것들은 화근이고, 쓸모가 없다! 혹시 어떤 사람은 최고의 이론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중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그 본인이 아직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행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기에 사람을 모두 잘못된 길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최소한 너는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사람이 진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헌신했다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늘 비현실적인 큰소리를 치지 말고, 적합하지 않은 많은 행위로 다른 사람을 속박하여 너에게 순복하게 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효과가 없기에 사람을 이끌수록 더욱 흐리멍덩하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이끌다가 많은 규례를 만들어 내어 사람으로 너를 혐오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부족한 면인데, 정말로 사람을 난감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를 많이 말하여라>에서 발췌


『네가 겨우 인식한 것은 다 어떤 것이냐? 다 도리이다!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보면 듣기 좋은 말과 형식적이고 얼버무리는 말로 너 자신을 포장한 것이고, 속의 것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 속에는 뒤섞임과 기만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지금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기만하는 수법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도리적인 기초나 이론적인 지식이 조금 있고, 겉면의 간단한 일들을 조금 알고, 도리에 대한 정의(定義)를 약간 파악하고는 더욱 자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정형에 처해 있을수록 더 위험한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신의 실제 정형에 대해 더 투철하게 파악할 수 있고, 또한 더 겸손하게 순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책망하거나 질책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기간 사역을 하면서 도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사람의 어떤 정형을 어떤 도리로 해결(원문: 答对)해야 할지, 어떤 일들을 도리로 훈계하고, 책망하고, 억누르고, 가로막고, 억지로 죄를 덮어씌워야 할지 알게 된다. 사람은 이런 사역을 잘할수록 더욱 교만해진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사람이 바른길을 가거나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치우친 길을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네가 뛰어다니면서 사역하고 교회(원문: 底下)에서 교회 생활을 수호하고 있다지만 사실,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고, 진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네 자신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새 신자가 하는 어떤 일들은 딱 보면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말들은 모르면서도 함부로 말하고, 어떤 일들은 모르면서도 함부로 논단하며, 어떤 일들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말하는데, 그것은 현저하게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이 도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감춰져 있는 대적과 기만, 감춰져 있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 저촉하고 배반하는 것들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런 것이 당연하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미안할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 자만자족하게 되는데, 결국은 여전히 바울의 길을 가게 되고, 베드로의 길에는 근접하지도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얼마 동안 사역하면서 질책하는 사람도 없고, 예배도 드리지 않게 되면 교회(원문: 底下)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에휴,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할 수 없구나! 정말 내 자신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하겠네.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때가 되면 일을 저지르게 돼……”라고 말한다. 보라! 사람은 말을 해도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때가 되면 일을 저지르게 돼.”라고 하는데, 왜 일을 저지르겠느냐? 사람이 그 방면의 진리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다 의의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일이 임했을 때 도리적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그 일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한다.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냐? 네게는 그것에 관한 진리가 전혀 없고, 너는 접촉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전혀 없고, 또한 그것이 진리임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저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만 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는 하지 못하며, 도리는 진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도리를 많이 알수록 오히려 더 심하게 대적하게 되는데, 마치 고무줄과 같아 아무리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아무리 잡아당겨도 더 늘어나지도 않는다. 지금 교회(원문: 底下)에서 어떤 사람은 도리를 말하는 것이 너희보다도 더 능숙하다. 오래 믿은 사람이든, 새 신자이든 이것은 교회(원문: 底下)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형이다. 새 신자라고 해도 너희가 말하는 그런 도리는 알고 있고, 대략적으로 말할 줄 안다. “소질이 낮아요.”, “인성이 안 좋아요.”, “성정이 나빠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소극적이 되면 안 돼요.”, “하나님의 날이 가까웠는데, 아직도 소극적이라니요.”, “하나님께서 오셨는데도 소극적이 되다니요.”,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시기가 얼마나 힘드신데, 아직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다니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인간이란 정말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입에 달고 있는 이런 간단한 말들은 입버릇처럼 되어 버렸는데, 이런 정형은 위험하지 않으냐? 내가 보기에 너희 각 사람은 다 아주 위험하다. 일단 다음 단계 사역이 시작되어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너희는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가 어느 곳에서 어느 구역이나 매우 넓은 지역의 형제자매들을 이끌게 된다면, 산을 차지하여 왕 노릇 하는 산적이 될 것이다. 너희는 자기가 맡은 구역마다 자신의 방식이 있다. 겉으로 보면 같이 모여서 교통도 하고, 서로 문제점들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의 구역에서 일을 할 때는 자기의 뜻에 따라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가다보면 치우친 길로 가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왜냐하면 네가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따라간다면, 설령 내가 너에게 날마다 교통해 줘도 네가 날마다 도리만 기억하고, 날마다 도리를 마음에 새기면서 도리에서 뿌리내리고, 실제적인 면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진입도 하지 않는다면, 역시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은 얼마나 되고, 남은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 예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 마지막에 하나하나 다 넘어지지 않았느냐? 깨달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더 흐리멍덩하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도리를 아는 것은 영원히 진리를 깨닫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에서 발췌


만약 사람이 성경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