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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 말세 심판

말세 하나님 사역을 받아드리는 교회는 축복하고 왜서 종교 단체를 저주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자신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교회만 축복하시는가? 왜 종교 단체를 저주하시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버리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다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고, 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오히려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인 이상,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도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각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성령의 새 사역과 관련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해도 성령의 징계가 없고 더욱이 성령의 깨우침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께 버림받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육체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역사할 때에 고의로 하나님을 적대하면서 역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지 못하는 것만 해도 이미 크나큰 패역인데, 하물며 고의로 역행하는 이 사람들이야 더구나 보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악행을 언급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저주하지 못해 한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그들의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련되는 것 같겠지만,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이름과는 조금도 관련되지 않고, 하나님의 증거와도 관련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는 무관하고, 하나님의 이름과도 관련이 없으며, 또 하나님의 현재 역사와도 관련이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모욕하고 사탄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 분노의 날을 위해 악행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경영을 가로막지 못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새 사역과 무관한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하든 지금은 그 어떤 상응한 보응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노의 날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기에 많은 일들은 하나님이 벌써 상관했어야 하고, 악을 행하는 그들은 진작에 보응을 받았어야 하지만, 경영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분노의 날도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의한 자들이 여전히 불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계에 있는 그들은 성령의 함께하심과 성령 역사가 없는 데다가 하나님의 이름까지 모욕하는데, 하나님은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고 오늘까지도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용인하십니까?”라고 말한다. 사탄을 드러내고 육체를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지한 소인배들이고, 황당무계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지를 그들이 알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철저히 정복하고 나면 악을 행한 사람들은 모두 보응을 받게 될 것인데,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사람을 징벌하는 때가 아니라 정복 사역을 하는 기간이다. 단지 경영을 파괴하는 일을 저지른 일부 사람에 대해서만 일을 저지른 경중에 따라 적합한 징벌을 내린다. 인류를 경영하는 기간에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가 있지만, 성령께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는데, 그들의 실행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은 오직 새 사역을 받아들인,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단지 받아들인 사람만 상대하는 것이지 받아들였는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대상이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과 서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고, 더욱이 하나님과 협력할 자격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은 왜 자신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교회만 축복하시는가? 왜 종교 단체를 저주하시는가?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을 추구하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만일 네가 교통한 것과 네가 진입하기를 추구한 것이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므로 너에게는 절대로 성령의 역사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네가 이전에 터득한 것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순수해도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네가 만일 그런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후의 진입에 커다란 가로막음이 될 것이다. 무릇 성령의 오늘의 빛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의 현재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인솔하는 데까지 따라간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성령의 그때그때 역사를 따르지 못한 그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역사 가운데 진입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역한 것이 아무리 많고, 받은 고난이 아무리 크고, 뛰어다닌 길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무릇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 성령의 현실 말씀 밖의 섬김은 모두 육체에 속하고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니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고 있으면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설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 섬기는 것이고 관념 속에서 섬기는 것이어서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지, 관념과 육체적인 섬김은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를 수 없으면, 그것은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섬김은 엇나가는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섬김은 하나님과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령 역사를 따르는 것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현시 뜻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 요구에 따라 할 수 있고, 오늘의 하나님께 순복하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고 또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이f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최신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으며, 최신 역사에서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패역을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과 실질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섬기는 중에서 차츰차츰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진실로 참 도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 역사에 도태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한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배반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관념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논단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찾을 수 있으면 하나님을 볼 기회가 있을 수 있고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은총에 달렸고 사람의 추구와 사람의 속마음에도 달렸다.


  무릇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떠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이전에 사람 몸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된 사람이다. 오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없는 그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생활이 있을 수 없으며, 그들은 모두 흑암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이 역할을 맡고 있고, ‘메시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그 배역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 역사를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새 사역에 뒤떨어진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그들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셋째 하늘로 끌어 올린다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고, 예수가 도대체 어떻게 흰 구름을 타고 와 그들을 데려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으며, 더욱이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그들이 상상하는 그날에 정말로 오는지 확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도 없다. 그들은 각자가 모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도대체 하나님이 다양한 종족의 하나하나의 ‘작은 무리’들을 끌어 올릴지, 이런 것은 그들 자신마저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지금은 도대체 어떤 시대인지,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지도 명확히 말하지 못하면서 다만 손가락을 꼽으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야 마지막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전부를 얻었다고 여기는 그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100% 확신이 있는 듯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그 사람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은 여전히 사람을 너무나 역겹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모두 간계를 부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옛 사역만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새 시대에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징벌받는 사람이 된다. 이 사람들은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또 무릇 낡은 율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논하고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최종에 자신의 양심 때문에 자신의 앞날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도 역사함에 있어 규례를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한 역사일지라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도태시켜야 할 것은 도태시키는데, 사람이 오히려 경영 사역 중의 작은 부분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황당무계함이 아닌가? 사람의 무지함이 아닌가? 복을 받지 못할까 봐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최종의 복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완고하게 지키는 그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되는 패역자들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이지 율법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되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의 사역과 서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고 사람의 실행도 바뀌어 지금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심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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