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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 말세 심판/천국 복음

만약 주님이 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면 어떻게 "신랑이로다"라고 할수 있을까요?


큐티모임에서...
김자매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지금 재난이 점점 커지고 있고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도 거의 성취되었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주님은 대체 언제 오실까요?
장형제님: 제가 듣기로는 인터넷에는 이미 주님이 돌아왔다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박형제님: 에이~성경에 말했잖아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마24:36) 주님의 재림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안거죠?

 

류형제님: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만약 주님이 오심을 아무도 모른다면 어떻게 "신랑이로다"라고 하죠? 게다가 주님은 사람을 구원하러 오시는건데 만약 아무도 주님이 오신 것을 모른다면 그럼 어떻게 그분을 따르고 믿을수 있을까요? 주님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이루죠? 성경의 일부분만 가지고 깨닫는다면 제멋대로 꿰맞추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마땅히 이 성경구절의 앞뒤부분을 함께 읽어봐야 정확한 뜻을 알수 있어요.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성경을 펼쳤습니다.

 

류형제님: 마태복음24:32-36, 42에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우리는 모두 이 구절은 주님의 재림징조에 대하여 말씀한 것임을 알고 있어요.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에서 보다시피 인자가 이미 문앞에 왔는데 언제 들어올지,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들어올지를 우리는 몰라요. 42절에 분명하게 말했어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는 "인자"가 인간세상에 오는 그날, 그 시간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지 주님이 오신 후에도 영원히 모른다는 것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주님은 예언에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여기서 주님은 다시 오시면 말씀을 발하여 사람들이 그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였고 게다가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어 더욱 많은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의 구원을 받게 하고 있어요.

 

장형제님: 알았어요. 마치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주님이 언제 올지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분이 정식으로 사역하자 성령이 증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점차 주님이 오신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시작했죠. 게다가 주님의 복음을 전했어요.

 

성경이야기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류형제님: 맞아요. 하나님이 말씀한 바와 같아요.  『그 당시 예수도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기 전에는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러나 세례를 받자 영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하면서’ 사역을 시작하여 그의 신분과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을 나타냈다. 그전까지는 마리아 외에 누구도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요한조차 몰랐다. 예수는 29세에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가 끝나자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듯 그를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례를 받기 전인 29세 전까지는 그 역시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식사해야 할 때 식사하고, 잠을 자고, 옷을 입는 등 일반인과 똑같은 행동을 했으며,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때의 관점이다. 그에게도 때로는 연약한 모습이 있었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의 나이는 그의 총명, 지혜와 함께 자란 것이다. 이 말은 그가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성을 갖고 있었으며, 일반인과 아무런 특이한 점이 없이 일반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시험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에는 직분을 이행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또한, 그에게는 능력과 지혜와 권병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받기 전에는 성령이 그에게 역사하지 않았다거나 그의 몸에 성령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은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사역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상인에게는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지 않은가. 성령은 항상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으며, 그가 강생할 때는 다른 사람과 달리 새벽 별이 나타났다. 또한, 그가 강생하기 전에는 사자가 요셉의 꿈속에 나타나 마리아가 남자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도 역사하기 시작했을 뿐이지, 성령이 그때 그에게 임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임했다는 것은 그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지칭한 말이다. 그는 예전부터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때가 되지 않았기에 사역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영은 함부로 역사하지 않고 세례의 방식으로 그를 증거했다. 예수가 물속에서 나오자 영은 본격적으로 그에게서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직분 이행과 구속 사역을 시작했음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는 각기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의 육신은 여전히 원래의 육신 그대로였다. 다만 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그의 신분을 나타냈을 뿐이다. 또한, 그는 권병과 능력으로 가득해졌다. 이것이 바로 예전과 다른 점이었다. 그의 신분, 즉 지위에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이다. 처음에는 몰랐던 사람들도 성령이 이렇게 증거하자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만약 성령이 증거하기 전이었다면 예수가 엄청난 사역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 자신의 증거가 없기에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육안은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증거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육신 하나님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그가 예전과 다름없이 사역했다면,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주로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이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하나님의 증거는 틀리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 한 사역과 이후에 한 사역이 같다면 성육신한 그의 직분은 물론,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눈에 띄는 차이가 없기에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증거 이후,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지켜야 하므로 반드시 그에게서 지혜와 권병을 나타내야 했고, 이전과 달라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세례의 효과가 아니다. 세례는 그저 의식에 불과하며, 세례받는 방식으로 그가 직분을 이행할 시간이 되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끝까지 책임진다.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예수도 곳곳에서 설교를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큰 사역은 하지 않았다. 이는 직분을 이행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어 육신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는 전혀 사역을 하지 않았다.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사역을 하지 않은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령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해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에게 사역할 능력과 권병을 주지 않았기 때문임). 설령 예수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는 앞으로의 사역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므로 그 누구도, 심지어 예수 자신조차도 어길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역을 스스로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는 일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초자연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영의 안배에 어긋나게 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매우 정상적으로 사역한다. 그의 사역에 권병과 능력이 생긴 것도 세례를 받은 후부터다. 다시 말해, 성육신했다 해도 초자연적인 행동이나 일반인의 성장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가 진작부터 스스로의 신분을 알고, 세례받기 전에 곳곳에서 큰 사역을 하면서 모든 일반인과 달리 비범함을 드러냈다면, 요한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못했을뿐더러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하는 일에 착오가 있다고 증명되었을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근원이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전부 세례를 받은 이후, 즉 3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에는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그가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러한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일반인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는 29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한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초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열두 살에 예배당에 예배하러 갔을 때 마리아가 그를 찾았다. 그때 그는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된 자인데 조금도 특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의 특이함이 초자연적인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다른 어린아이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했을 뿐이다. 겉모습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본질은 특이하고 남달랐다. 하지만 성령이 그에게 역사한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낀 시점은 세례를 받은 이후였다. 33세가 되던 해에 그는 비로소 성령이 그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할 것임을 알았다. 32세 때는 실정을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때가 되자 알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령도 그에게 점차적으로 역사했으며, 과정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성육신한 인자라는 것을 알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째서 세례받기 전에는 사역하지 않았겠느냐?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가 이행할 직분을 말해 준 후에야 근심하며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겠느냐? 어째서 요한이 그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세례를 준 후에야 비로소 오랫동안 몰랐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이 모든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사역임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그가 깨닫고 도달하기까지 전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기에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과는 달랐다.

김자매님이 불현듯 깨달았다는듯 말했습니다. "사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이 말씀은 주님이 오는 시간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네요. 주님이 오시면 분명히 사람들이 알게 하고 주님이 오신 소식을 전해 사람들이 알게 하네요. 오늘의 예배 빛비춤이 있어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성경구절에 대한 토론, 너무 소중하네요. 아니였으면 저는 주님의 재림 소식을 들지 못해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잃어버릴뻔 했네요. 그럼 주님께 버림받는거잖아야. 이 얼마나 엄중한 잘못인가요.
박형제님: 주님의 재림징조가 다 나타났는데 보아하니 우리도 얼른 찾고 알아보아야겠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재림을 맞아할지에 대하여 알고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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